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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커피
에디터
• 1년 전

자유 의견주절주절

우선 먼저 짚고 싶은 건, 합법화와 비범죄화는 다르다는 겁니다. 글에 나와있는 호주의 사례 역시 비범죄화를 확대한 것입니다. 비범죄화가 합법화의 전 단계이든 뭐든, 합법화와는 구분이 됩니다. 아무튼 저는 성매매 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확대하거나, 이들이 자생력을 갖출 수 있도록 복지와 자선 시스템이 잘 구축되기를 바라며 성매매 비범죄화에 동의합니다. 또 제재는 판매자와 구매자, 그리고 상황에 따라 여성에게도 주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어쨌든 성매매 합법화를 둘러싼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데요, 몇 가지 짚어보면서 제 생각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자기결정권이라는 개념은 저 역시 존중합니다. 어떤 집단은 이렇게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성매매는 여성(성매매 종사자의 절대 다수가 여성이므로 이렇게 표현하겠습니다)이 자신이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성관계를 맺을지 선택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과 연결돼 있어.'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을 처벌하다니. 불쌍한 사람들이잖아. 경제적인 이유로 성매매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얼마나 힘들면 그런 선택을 했겠어.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처벌은 안 돼.' 이건 그야말로 모순입니다. 분명 자기결정권에 따라 성매매 업종에 종사하는 것을 선택했다고 했는데, 한편으로는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려 어쩔 수 없이 그 길로 빠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기결정권이 경제적인 상황 등에 의해 무시되고, 뒤로 밀려난 거죠. 어쩔 수 없이, 필연적으로, 그 길로 빠졌다면서요. 성매매라는 개념 자체가 자기결정권의 발현이라 할지라도 상황에 의해서, 그리고 판매자와 구매자가 있다는 그 상황에 의해서, 성매매=자기결정권의 발현이라는 개념은 오염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제재는 필요하죠. 그래서 많은 국가들이 합법화 대신 판매자와 구매자에게 형사처벌 이외의 제재를 가하는 비범죄화를 택하고 있는 겁니다. 성범죄율에 대한 이야기도 해볼 수 있겠군요. 성매매를 합법화하지 않으면 성범죄율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한국도 그랬고, 스웨덴도 그랬다고 해요. 그런데 이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행위를 명확하게 '불법'이라고 못을 박으면 어영부영 애매하게 다뤄지던 것들이 '범죄'가 되고, 자연히 범죄율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흑인을 물건으로 보면 안 돼, 그들은 사람이야, 라고 말한 순간부터 흑인 대상 범죄라는 개념이 '생겨나고', 또 '늘어난' 것과 같은 맥락이죠. 따라서 단순히 세 자릿수 퍼센트나 늘었으니 통계 좀 보라고 하는 것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만한 유인이 되지는 않습니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남성우월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의 사유재산처럼 여겨졌다, 동의합니다. 그럼 여기에서 진정 여성의 지위를 회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저는 남성, 사유, 재산, 세 꼬리표를 모두 떼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은 여성이다, 여성은 그 자체로 주체인 겁니다. 그런데 사유재산이 아니니 공적재산이다? 핀트를 잘못 잡았다고 생각해요. 스스로를 공적재산으로 여기는 사람은 있을 수 있겠지만, 모두를 공적재산으로 못박는 건 안 됩니다. 성매매 합법화가 여성들의 주체성을 인정하는 유일한 수단인양 굴고, 여기에 대해서 '그렇지만 다른 방법도 있는 걸?'하고 이야기 했을 때 '성평등에 균열을 일으키지 마!'라고 일갈하는 집단이 있는 한 의미있는 논의를 더 전개하기란 힘들어질 겁니다. 무엇이 정말 여성을 위한 것이고, 무엇이 정말 여성을 여성으로 바라보는 것이며, 무엇이 정말 성평등에 관한 생산적인 논의일 지 우리는 고민해야 합니다. 성매매를 하루아침에 뚝딱 합법화한다고 성평등이 구현되나요? 오랜 세월 사회 곳곳에서 문제들이 터져나왔으니 차근차근 메워나가야 하는 게 아닐까요? 로자 파크스 같은 운동가들이 하루아침에 뚝딱 무언가 없애고, 만들고, 누군가를 매도해서 사회를 이만큼이나마 바꿔놓은 게 아니잖아요. 작은 것들에도 관심을 가지고 많은 논의들이 생겨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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